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보온달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울보인 평강공주가 마을의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서, 바보 온달을 훌륭한 장군으로 성장시키고, 왕에게 사위로서 인정을 받아 낸다는 이야기. 그러나 우리는 이 설화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설화의 특징이 그러하듯 바보온달 이야기 에도 허구와 사실이 섞여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바보온달 설화를 자세히 보자. 온달은 평강공주의 도움으로 무예를 단련하고, 무공을 세워 나중에 평강왕에게 사위로서 인정을 받고, 대형(大兄)벼슬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현실감은 약간 떨어진다. 오히려 온달이 스스로 무예를 단련하였고, 무공을 세워 평강왕이 대형(大兄)벼슬을 주고 사윗감으로 점찍어 평강공주와 결혼을 했을 것으로 보는게 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이 새로운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면 온달은 전혀 바보 같지가 않다.


    왜 그는 바보라 불리었는가?


     그렇다면, 왜 온달은 바보로 묘사되었을까? 흔히 설화에서 바보, 이상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특정 집단에게 이방인이나 이단자인 사람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는 처용 이나 석탈해가 있다. 그럼 온달은 누구의 눈에 이방인 혹은 이단자였을까? 여기서 온달은 과연 어떤 신분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우선, 만약 온달이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 이였다면 대형(大兄)이라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고구려에서 관직에 오르기란 귀족이 아니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온달과 공주의 결혼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온달이 명문 귀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이, 만약 온달이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면 두 사람의 결혼은 화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다면 설화로 남지도 않았을 것이니까. 온달은 분명 뜻밖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계급 범위는 벗어난, 그야말로 명문 귀족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과 엄연히 다른 이방인이자 이단자였을 것이다.


     평강왕의 즉위 초기에는, 왕권이 상당히 불안하던 시기였다. 귀족 세력들 사이에서 허약해져있는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평강왕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지지해줄 신진세력의 확보이었을 것이다. 이때 등장한 온달은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었다.

    그런 온달과 공주의 결혼이 성사 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왕과 신진세력과의 결합으로 왕권이 한층 강화 될 것이고, 이와 반대로 자신들의 세력이 줄 것을 예상한 명문 귀족들의 반대가 빗발 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달은 공주와 결혼을 했고, 그런 온달이 구세력인 명문 귀족들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온달과 공주의 결혼을 두고 명문 귀족들은 바보울보의 결혼이라고 질투 섞어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온달은 우스꽝스런 외모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거렁뱅이로 한껏 격하되고, 공주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출세한 것으로 각색되었다.


     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도 두 사람의 결혼은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온달과 공주의 결혼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흥미진진한 요소가 덧붙여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과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온달 이야기는 어느 땐가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600여 년이 지난 12세기 고려 때, 김부식에 의해 삼국사기열전에까지 올랐다.


     이번에는 온달의 죽음에 대해 알아보자. 평강왕의 아들 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겼던 한강 북쪽의 땅을 되찾아 오겠다고 왕에게 건의했다. 온달은 전쟁에 나가기 전,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신라군과 아단성에서 싸우다가 적의 화살에 맞고 죽었다. 그리고나서 장사를 지내려는데 아단성에서 관이 움직이지 않자,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온달은 죽어서까지 그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 이런 모습 때문에 더더욱 온달은 충신으로 보인 것 같다. 삼국사기에서 온달은 을파소, 밀우, 유유, 박제상 등 충신들의 열전에 함께 묶여 있다고 한다. 김부식에게도 온달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충신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바보온달 설화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맞다는 추측에 의거하여, 결국 온달은 바보가 아니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건 그저, 그가 몇몇 명문귀족들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설화를 읽을때는 항상 허구인지 사실인지 생각을 하며 읽어 보아야한다. 무비판적인 역사 수용은, 나라의 충신을 한낱 바보로 만드는 실수를 범할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Daum 책)





    Posted by 티엘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