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간단하게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아직 한번밖에 읽지 않았기에, 너무나 수준이 낮은 감상평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후에 내가 한 번 더 이 책을 읽고, 그때에 다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성장 하였는지 가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우선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만약 심층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단순한 참고 정도의 수준으로만 보아준다면 좋겠다. 나보다 훨씬 깊은 생각을 가지고 책을 다룬 글들이 인터넷에 이미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정의라는 단어를 사람이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 인간의 행위나 제도의 시시비비(是是非非)의 판단기준이라고 정의(正意)내리고 있다. 생각보다 정의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도 흔히 있으며, 또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등 일상생활에서 정의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의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선, 정의는 상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정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내려진 시대적 배경, 환경 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이 3년간 부모님의 무덤 곁을 지키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인줄로 알고 있었고, 이것은 곧 자식의 효심을 판단하는 하나의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3년상을 치르는 집은 거의 없다. 오히려 장례 절차는 점차 간소화되는 추세를 보이며 따라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3년상을 치러야 효자다라는 정의 또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시대적 배경으로는 대략 1주일 정도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여 생활하는 것이 하나의 정의처럼 되었다.

     

     두 번째로, 정의를 적용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실제 상황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게 선택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한명을 희생해서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한명은 다른 다섯 명과 아무런 연관도 없고, 그저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상황에 놓이게 된 것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의 생존을 위해 한사람의 희생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반면,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과연 함부로 경시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주장도 선택할 수가 없기에, 정의 앞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의라는 것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어느 것이 옳다고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도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이러한 딜레마들에 대해 공리주의관점, 자유주의 관점, 목적론적 관점 등의 관점을 제시하여 조금이나마 더 진지한 태도로 딜레마를 대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판단을 대신 내려 줄 순 없지만 판단을 어떻게 내리면 좋을지 도와줄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책을 접했을 때, 여타 다른 학문보다 사회복지학에 이런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학은 예측, 법칙, 이론을 중시하는 자연과학과 의사소통, 관습, 사회의 구성적 의미를 중시하는 사회과학 중에서 사회과학에 속하고, 그중에서도 이론을 활용해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응용사회과학에 속한다. 따라서 사회복지학은 항상 딜레마에 빠지기 쉬울 것 이다. 그러한 딜레마 상황을 빠져 나가기 위해서라도, 사회복지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 활동 중에 지켜야 할 윤리강령 때문에라도 항상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는 주요가치에 기반을 둔 전문직의 의무와 임무들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현재 지역사회복지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사람이 있다. 이 사회복지사의 클라이언트 중에는 여자청소년도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복지사는 이 여자청소년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회복지사는 여자청소년에게 낙태를 강요할 수 있는가? 만약 낙태를 강요한다면 그건 사회복지사로서 클라이언트의 결정권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것이고 태아라는 소중한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셈이다. 반면, 여자청소년이 아이를 낳고 키우게끔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여자청소년의 결정권을 존중해준 나머지 생명권을 무시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사실상 이러한 상황이 쉽게 발생하기는 힘들며, 발생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예시를 살펴보자.

     

     ‘현재 사회복지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번년도 사회복지 예산 삭감 대상 기관 중에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기관이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올해의 계획안을 수정하게 되었다. 수정에 수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가지 계획안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한다. 하나는 부모 없는 아동을 위한 복지계획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식 없는 노부부를 위한 복지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계획안을 포기하는 것이 옳겠는가?’

     짧은 예시였지만, 딜레마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도 하기 힘들게 만든다. 우리가 과연 어느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을 위한다며 선택에 나설 수 있는 존재인가? 딜레마는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위의 사례에 책에 나타난 여러 관점들을 대입하여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먼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클라이언트인 여자청소년의 낙태문제를 바라보았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행복을 극대화 하는 행동이 가장 옳은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결과 공리주의에 따르면, 여자청소년이 낙태를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행동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만약 그 청소년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면, 그녀는 물론이고 그녀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복지기관에서는 그녀를 미혼모 지원정책에 포함시키고 그에 따른 예산분배를 다시 해야 하기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그녀가 낙태를 선택한다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그녀와 그녀 뱃속에 자리 잡은 태아, 그리고 넓게 잡아봐야 그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정도가 될 것이다. 낳아서 기르는 것 보다 낙태를 선택했을 때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더 적은 셈이기에 낙태를 해야 된다는 것이 공리주의관점의 주장이다.


     공리주의 관점을 이용하여 내가 직접 내린 결론이지만, 나는 도무지 이 결론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만약 아기를 낳아서 잘 길렀을 때, 그 아기가 어른이 되어 사람들에게 어떠한 행복을 안길 수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애써 내 선택을 부정하며, 나는 공리주의관점에서 정답을 제시하는 행위를 그만두고 말았다. 공리주의관점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다른 여러 가지 사안은 무시한 체, 극단적 결론만을 내리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자유지상주의 관점을 위 사례에 적용시켜보았다. 사실 자유지상주의는 나에게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내가 막연하게 추구하던 태도들이 자유지상주의에서 정리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쉽게 말하면, 3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러한 행동을 할 권리를 침해받지는 않아야물론, 자유시장 철학이 적용 될 경우에는 자유지상주의의 정의가 더 복잡해지나, 일단 최대한 단순히 정의를 내렸을 때한다는 것이다. 평소,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장땡이라고 생각을 하던 나였기에 자유지상주의를 사례에 적용시켜 보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자유지상주의 관점에서 여자청소년의 낙태문제를 적용시켜보면, 낙태를 하거나 말거나 그것은 임신을 하게 된것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구태여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은 사회복지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 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러한 논리가 옳다면, 사회복지의 존재 이유 또한 무의미해진다. 대표적으로 소득재분배를 예로 들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에서는 돈을 많이 번 개인이 불우한 이웃에게 기부를 하고 선행을 베푸는 것은 그 개인의 자유이지 다른 사람이나 정부가 나서서 간섭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사회복지가 필요 없어지는 것 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딜레마에 정의로 접근하는 시도가 있었으나, 더 이상 나는 정의로 접근하는 것이 두려워 졌다. 이제 막 사회복지 과목의 공부를 시작한 학생이면서 딜레마를 너무 만만하게 본 내 탓 이였다.

     

     정말 정의란 무엇일까? 사회는 다원화가 되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적절한 정의 일까? 함부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고, 한편으로 정의내리기가 쉬워서도 안 된다.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의 권리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의 권리도 무시되어지지 않고, 최대 다수가 아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의가 실현되게끔, 그 딜레마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사회복지를 이끌어갈 우리들이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티엘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