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를 고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먼 옛날의 사실을 가지고 최근의 사실을 설명하려는 태도과거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물론 친숙할 수밖에 없지만는 때로 마취상태에 이를 만큼 우리의 연구를 지배해 왔다.’


     이는 이제 막 책의 서론을 지나 본론이 시작 될 때쯤 나오는 얘기이다. 책 초반부터 이 문장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역사란 무엇이었는가. 그저 먼저 간 선인들이, 사료를 통해서 남겨놓은, 그런 기록이라고 생각했을 뿐 한 번도 그 사료들을 의심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료들로 하여금 그야말로 마취상태에 빠진 채로 역사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단지 사료가 그렇게 남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료를 전제조건으로 깔고 무조건으로 신봉하며 공부해 오진 않았는가. 이 말은, 역사를 수용하는 데는 비판적 수용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역사는 뒤에 자칫 정확한 사실이 밝혀졌을 경우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역사를 수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역사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 도 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면, 잘못된 정보가 나올 경우 바로바로 수정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일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역사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역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회과목을 통해 꾸준히 배워왔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결국엔 초등학교때 배웠던 선사시대부터의 내용의 반복 이였다. 또 이 책에도 나와 있듯, 역사는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때로는 말만 들어도 염증을 느끼게 된다.’고 묘사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 제목이 역사를 위한 변명인게 괜히 그러겠는가. 이 책은 역사 가 역사 자체에 쌓인 인식에 대해 변명을 하는 듯 서술되어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줄 수 있다. 역사는 지루하다는 인식을, 역사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을 기르게 하여, 역사에 하여금 의문과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보를 수용하고 어떤 정보를 수용하지 말아야 할까. 사실 어떤 역사 정보를 수용 할지에 앞서 어떤 역사 정보가 진실한지 알아내는 것도 힘들다. 무릇 역사란, 역사가가 취사선택하여 선택되어진 결과만 기록되기에, 이에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해 체결한 조약인 을사늑약을 일본 역사가는 을사조약으로 표현 하는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늑약은 조약이 되기도 하는데, 동일한 사건을 보더라도 각 역사가 마다 인식하는 것이 다르다는 얘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역사가는 죽은 영웅들에게 찬사나 비난을 부여하는 일종의 지옥의 심판관으로 행세하였다.’라는 문장에서처럼, 역사가는 결국 지나간 사건과 그 인물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그 사건이나 인물이 현재에 와서 찬사를 받을지, 비난을 받을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역사가는 사건(인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의 수용자 입장인 우리는 그 역사가가 왜 그 사건(인물)을 그렇게 평가 하였는지, 또 그 사건(인물)은 왜 그렇게 평가 되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블로크는 역사를 과거의 한 사건에 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 속의 인간들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한다.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하는 책의 해석과는 달리, 나는 역사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결국 역사란, 과거에 대해서만 한정된 학문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소통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발견이나 누군가의 지적으로 인해, 역사는 새로 쓰일 수도 있고, 그 누군가가 심지어는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는 물론이고, 역사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항상 요구되는 것이다.’



    Posted by 티엘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