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이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보자. 우선, 정글은 그 규모가 크고 매우 복잡하다. 맹수가 들끓고, 약자는 강자에게 잡아먹기도 한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모두가 살벌하게 살아간다.

     

     이번엔 눈을 감고 다른 상상을 해보자. ‘병원이라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가운데에 녹색 십자가를 달고 있고, 주차장엔 항상 많은 차들이 서있으며, 빼곡하게 창문이 달린 하얀 건물이 떠오른다. 하얀색이 주는 깨끗한 느낌 때문인 걸까? 신기하리만치 많은 병원들의 건물 색은 하얀색을 띠고 있다. 그런데 그런 하얀 건물 안에 정글이 존재한다면 어떻겠는가? 숲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그 정글에 의해 병원의 생태가 구축되어있다면 믿어지는가? 영화 <하얀 정글>은 우리에게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그러한 정글의 실상에 대해, 그리고 그 정글 안의 먹이사슬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세상에 고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면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몸이 아픈 환자와 그런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그리고 환자와 함께 병원에 온 보호자(물론 보호자 없이 환자만 내원하는 경우도 있다)가 있다. 환자는 의사의 치료를 받고 건강을 되찾으며,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주고 그 의료행위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보호자는 환자를 보조해주고, 의사에게 치료비를 지급하며 환자가 주의할 점 등의 조언을 구한다. 이러한 세 종류의 상호관계가 병원의 가장 이상적인 삼각체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 삼각형에 한 종류의 사람이 더 들어오면서 체계는 더 이상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정글의 생태계로 바뀌게 된다. 바로 병원장(또는 기업인, 투자자)이다.

     



     영화의 한 장면 중에, 의사가 환자의 보호자에게 로봇수술을 권유하는 장면이 있다. 의사가 로봇수술이 일반 수술과 비교해서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설명하며 보호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보호자는 환자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로봇 수술을 택하게 된다. 비용 측면에서 로봇수술은 일반수술에 비해 훨씬 비싸다. 그러나 사실 로봇수술과 일반수술의 큰 차이는 없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으로 장면은 전환된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가 자신의 욕심으로 교묘하게 거짓을 섞어 환자들이 더 비싼 치료를 받게끔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윽고 그 이유를 파악하며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환경속의 인간 관점에서, 의사 역시 병원이라는 환경에 속한상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병원장의 아래에서 의사는 의사이기 전에 피고용인 신분이 된다. 조직에서 의사는 조직구성원으로서 체계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환경에서 환자는 치료가 필요한 아픈 사람이라기보다는 의사에게 건수가 된다. 의사는 자신에게 할당된 건수를 위해 더 속도감 있는 진료, 더 큰 한건을 위한 진료를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사랑, 의사의 명예, 열정이라는 가치보다는 돈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가치전도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잘 발달되어있다. 그 덕분에 몸이 아프더라도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병원에 가볼 수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병원비의 절반정도가 급여로 삭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마저도 피해가려고 노력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 더 진료를 늘리려고도 하고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으며 그 제약사의 비급여 약물을 더 사용하기도 한다. 비급여가 병원 입장에서는 더 돈이 되기 때문인데, 이러한 행태에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환자이다. ‘병원이라는 기업과 제약사들의 농락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들의 보건·의료의 권리와 같은 기본권, 더 나아가 생명권조차 위협받는,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민건강보험체계 개편방향으로 당연지정제 폐지가 논의된 적이 있다. 당연지정제란, 모든 의료기관은 개설과 동시에 건강보험의 적용기관으로 강제 지정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병원들은 구태여 건강보험을 적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건강보험을 회피할 수 있어짐에 따라 선택적으로 환자를 받았을 것이다. ‘더 나은 의료에 대한 투자라는 명목 아래, 자연히 병원비는 인상되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당연지정제는 폐지되지 않았고, 오늘날 우리는 건강보험을 받으며 병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생각만 해봐도 무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나라 의료계의 민낯을 철저히 밝혀 놓았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사실 의사가 아닌 돈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의료계는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료계에 개입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매서웠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돈 앞에서 인권이란 마치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듯했다. 누구보다 생명의 존엄성을 잘 아는 의사와 병원에 의해 무시되어지는 인권은 너무나 참혹했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이미 상당히 선진화되어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의료기술이 더 발전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건강보험을 민영화하는 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이 의료혜택을 받기 어렵게 만든다. 의료기술의 수준은 높아지지만,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현재에도 건강보험은 아픈 사람들과 그들의 인권을 지켜 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보이기도 한다. 보다 전인적인 측면에서, 의료현장의 인권에 대해 제대로 논의 되어 건강보험이 더 많은 사람, 다양한 분야에 적용토록 한다면 의료수준 못지않게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글이 가지는 다양한 특징 중 앞에 언급하지 않은 중요한 역할이 있다. 정글은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수증기를 발산시켜 비가 오게 하고, 그 비로 자라난 정글은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 <하얀 정글>인 병원이 사회의 허파가 되어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희망을 공급하는 하얀’, ‘정글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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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티엘에이